■ 정신없이 세월은 간다.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어제 아들녀석이 새벽까지 뜬 눈으로 유성우를 관측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억 속에 묻어 둔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별을 찾아 산을 올랐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꿈과 열정이 넘쳤던 그때, 무엇이라도 하면 될 것만 같았던 시절이였다. 그러나 결국 무엇하나 실천에 옮기지 못한 채 나약한 청춘을 안고 살았던 세월이였다. 그때 별은 나에게 위안이였고 도피처였다.
세상으로 나오니 별 볼 여유가 좀처럼 없었다. 별과 우주는 내가 걸어가는 세상과 너무 멀리 동떨어진 존재 같았다. 그렇게 달려온 세월,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소행성이 아쓸아쓸 지구를 비켜 갔다는 뉴스가 들려와도 무감각해 졌다.
이젠 130년 만에 온다는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언제 떨어졌는지 조차 모르고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사이 그나마 아들녀석이 나를 대신해 유성우를 봤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아들녀석이 나처럼 무작정 별을 찾아 산을 오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같은 별바라기는 되지 마라. 뛰어난 우주과학자가 되던지 아니면 영어단어, 수학공식 하나 더 외워 좋은 직장 가지고 여유있게 마음껏 별과 우주를 보며 살던지...그러나 공부만 잘해 최고가 되는 것을 나는 인생에서 성공이라 말하고 싶진 않구나. 또 여유가 있다고 하늘을 쳐다보며 살지도 않겠지..."
떠돌이 같은 삶을 살 것 같았는데 어느새 나도 세상과 융합해 부두에 정박해 있다. 건강하게 오래산다면 별 볼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이제 밤을 지새우며 별이나 유성우를 보는 순간도 쉽게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마침 오늘 선배가 포토에세이를 하나 보내 왔다. 막걸리 한 잔 마시며 읽어야 할 에세이다. (조영준의 다이어리에서...)
"그냥 무작정 걸었으면"
리얼 버라이어티 쇼였으면 좋겠어.
인생이 막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가끔씩 앙코르 연장 공연도 가능한
연극이었으면 좋겠어.
총에 맞아 죽을 때는 더욱 스릴 넘치게 걱정 없이 마구 비틀거리고
핑그르르 카메라를 보고 몇 바퀴 도는 여유도 부릴 수 있는
쓰리디 입체영화였으면 좋겠어, 인생이
정말 일장춘몽이라면, 지금의 꿈에서 문득 깨어 나와
잠옷을 벗고 이불을 개고 눈곱을 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밝은 해를 보면서 늘어지게 기지개 켜며 하품도 하고
다시 새 꿈을 꾸었으면 좋겠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렇게 사는 것이 진짜 나의 삶일 리 없어,
누군가와 배역이 바뀐 것처럼 늘 아쉽고 모자라기만 하고.
그러니 연극이든 영화든 꿈이든 다른 배역 다른 줄거리
내가 진짜 바라는 삶의 대본이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도록
오늘은 시원한 바람 맞으며 그냥 무작정 걸었으면 좋겠어.
[경언저널 5호/권영갑 시인의 포토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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