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식사 때 마다 열무김치를 드셨다.
할머니의 열무김치는 여름에 냉장고 보다 마당의 깊은 우물 속에 두레박처럼 내려져 있다가 밥상에 올라오곤 했다.
나는 그때 열무김치를 잘 먹지 않았다.
고기반찬이나 계란 같은 주로 육식성 음식을 찾았다. 할머니에게 그런 반찬을 해달라고 떼를 쓰면서...
할머니는 방학 때 찾아온 손자들을 위해 닭을 잡아 삼계탕을 만들거나 갈치, 동태 같은 고기 반찬을 장만하셨지만 당신은 늘 열무김치만 드셨다.
'괴기(고기)는 싫어...'
할머니는 항상 '열무김치를 먹으면 속이 편하다'고 하셨다.
커가면서 나는 할머니가 고기반찬을 좋아 하시면서도 맛있는 것은 아들과 손자들에게 주려고 드시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도 열무김치가 좋았다.
담백하고 많이 먹어도 속이 편했다. 한참에 열무김치만 한그릇을 다 비우는 날도 있었다.
"열무김치 없나..."
아내에게 열무김치를 주문하는 횟수도 늘었다.
먹는 속도가 늘자 마트에서 조금씩 사 오던 아내가 손수 열무를 구입해 와 열무김치를 담았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으면서 할머니의 식성을 닮아가고 있다.
그러나 난 아직 할머니처럼 고기 반찬을 옆에 두고 열무김치만 고집하진 못한다.
또 아이들에게 고기반찬을 양보 하지도 않는다.
열무김치를 먹을 때만 할머니의 영혼이 느껴질 뿐, 아직도 나는 어린시절의 식성과 그때 그 철없던 버릇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조영준의 스토리텔링](투데이포커스 ⓒ www.todayf.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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